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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로프스크의 건설과 러시아 극동 정복: 미지의 땅을 개척하다

러시아 극동의 첫 발걸음: 미지의 땅 하바로프스크 17세기 중반,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넘어 극동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러시아인들은 유럽과 시베리아 서쪽에서의 영토 확장에 성공한 후, 아시아 대륙 동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죠. 그 과정에서 오늘날의 하바로프스크 지역을 포함한 아무르강 유역으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하바로프스크 는 이 새로운 러시아 극동 정복의 상징적인 도시로 자리잡게 되었고, 그 시작은 모험과 충돌의 연속이었습니다. 에로페이 하바로프의 등장과 개척의 시작 1650년대, 러시아의 탐험가 에로페이 하바로프 는 당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아무르강 유역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중국 청나라와 인근의 만주족들이 오랜 기간 지배해 온 지역으로, 강력한 저항이 예상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바로프는 러시아의 이익을 위해 이 지역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정착지를 세우고 성채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원주민들과 충돌을 겪으며, 청나라와의 첫 갈등을 맞이하게 되죠. 청나라와의 충돌: 네르친스크 조약의 배경 하바로프의 개척 활동은 청나라와의 긴장을 초래했습니다. 청나라는 러시아의 진출에 위협을 느껴 군대를 파견했고, 이는 결국 양국 간에 여러 차례 무력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두 제국은 장기적인 충돌을 피하고자 네르친스크 조약(1689) 을 체결하게 됩니다. 이 조약은 아무르강을 기준으로 양국의 경계를 설정하여 러시아의 극동 확장을 제한했습니다. 이는 러시아가 처음으로 동아시아 국가와 공식적으로 외교 협정을 맺은 사건으로, 이후 러시아의 극동 정책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하바로프스크의 발전과 시베리아 철도의 완성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러시아는 극동 지역을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하바로프스크는 시베리아와 태평양을 연결하는 중요한 요충지로 부상했습니다. 특히 1890년대 시베리아 철도의 완성 은 하바로프스크의 발전을 가속화시켰습니다. 철도를 통해 러시아의 본토와 하바로프스크,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되며, 러시아는 아시